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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웅과 SF의 탄생! 이퀄리브리엄!

스쿠터로세계일주 2008. 3. 29. 10:55
영화 줄거리
미래의 세계..'리브리아'는 '프로지움'이란 약물에 의해서 감정을 억제하고 관리하고 있다. 이에 반하는 반체제인사들을 색출하고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존 프레스턴은 최고의 실력과 충성심을 지닌 인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 뿐만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마저도 프로지움을 중단하고 '감정'을 받아들이고 결국 시대의 희생양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프로지움을 줄이게 된다. 그러면서 만나게 되는 반체제집단과 보게되는 독재자 총사령관의 본모습...그리고 감정의 소용돌이....그 시대가 만들어낸 최강의 요원 프레스턴은 이제 총부리를 돌리게 되는데...

영화 감상평

나의 평가
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

메트릭스라는 희대의 시리즈에 가려 그 빛을 잃을뻔 했던 영화가 있다.

비슷한 캐릭터에 비슷한 액션, 이마주....그렇게 폄하받던 작품은 관객에 의해서 되살아 났다.

그 비슷하다는 시각 자체가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이다.

마치 이 영화 이퀄리브리엄 속의 세계에서 총사령관에 의해서 제공되는 정보속 세계의 시민처럼..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메트릭스와 다르다'는 사실이 아니다.

메트릭스와 비교하고 관련짓는 순간 이미 이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메트릭스는 메트릭스, 이퀄리브리엄은 이퀄리브리엄이다.

네오는 네오고, 존 프레스턴은 존 프레스턴이다.

 

감정은 모든 악과 분쟁의 씨앗이다.

미움, 질투, 욕망 등의 감정등은 끊임없이 분쟁을 만들고 다투게 만든다. 뿐만아니라 기쁨이나 행복같은 감정 역시도 더 많은 기쁨과 행복을 위해 타인을 짖밟는 것을 서슴치 않게 한다. 결국 모든 분쟁의 씨앗은 감정이고 감정이 없다면 다툴일도 없고 사회가 혼란스러울 일도 없다. 하지만..행복할 일도 없다.

 

리브리아는 완전한 자유의 세계다. 감정이 없으니 누구든 자신이 하고 싶은(할일)을 한다. 그러한 상황에 대해 감정이 없으니 불만이 있을리 없다.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는데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세계" 이 얼마나 완벽한 "자유"의 세계인가?

비록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을지라도 통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완벽한 자유로운 세계일 것이다. 

 

이 영화의 중심은 감정이 아니다. 결국은 다른 SF물의 태마이기도 한 완전한 미래, 고통없고 행복하기만 한 그러한 미래가 그것이다. 매트릭스속의 세계 역시도 인간의 몸을 해탈시키기 위한 장치이고, 이퀄리브리엄 속의 미래 역시도 분쟁의 아픔없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브이포 벤데타속 완전한 통제의 세계 역시도 마찬가지 이다. 분쟁없는 행복한 미래....하지만 영화속 과정과 결말이란 결국 "본말의 전도"라는 상투적인 상황을 이끌 뿐이다.

 분쟁없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통치자들의 행위가 결국은 인간의 행복이 아닌 시스템의 완전성을 가져올 뿐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역시 상투적으로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진정 행복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인간다운 세계", "인간다운 삶"이다. 과연 감정대로 사는 것이 인간다운가? 싸우기도 하면서, 울기도, 웃기도 하면서 희열과 고통이 함께하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영화의 결론도..관객의 결론도 결국은 '그렇다'이다. 간섭하지 말고 인간이 인간처럼 살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차라리 '나를 좀 내버려두시오'라고 도망다니는 '좀머씨 이야기'의 좀머씨가 더 솔직해 보인다.

 

그러한 영화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이는 우리중 얼마나 되는 사람이 자유, 행복, 시스템, 삶, 고통, 슬품 등의 진실된 고민을 해보았을까? 영화가 말해주는 미래가 우리의 미래는 아니다. 영화가 결론지어 주는 결론이 우리의 결론도 아니다. 우리 액션에만 심취하지 하는 것도 좋지만 조금더 고민해 보자!

메트릭스는 메트릭스!

이퀄리브리엄은 이퀄리브리엄!

너는 너! 나는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른글..

 

가장 이상적인 통치제도라면 무엇을 말하는가? 민주주의? 군주론? 대체 무엇이 가장 이상적인 통치제도 인가?

 

일련의 SF영화들의 화두는 이에대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SF영화들에서 나오는 어둡고 칙칙한 미래들..그리고 통제된 사회들...이들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유사이래로 가장 이상적인 제도를 꼽으라면? 군주제를 뽑고 싶다. 단 절대적인 조건이 있다면 바로 이상적인 군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은하영웅전설에 나오는 라인하르트 같은 군주 말이다. 계급도 인정치 않고 그어떤 특권계급을 만들지도 않고, 자신역시 특권의식을 가지지 않으려 하고 이를 실천하고 정치나 경제 뿐만 아니라 전쟁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전술적 능력까지...완벽한 군주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말로 만화같은 이야기 일 뿐이다.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기득권에 의해 권력을 얻지 못할 것이고, 권력을 얻었다 하더라도 유지가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전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등을 받는다면 모르겠지만 그래도 유지는 힘들다. 바로 다음에 말하는 이유 때문이다.

 

군주론의 가장 약점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군주에게 있다. 즉 군주의 능력에 따라서 흥망성쇠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라인하르츠같은 군주가 나온다선 치더라도 그의 후계자까지 그럴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혈통주의를 취하든 아니면 민주적 요소를 더해 선거를 치르던 마찬가지 이다. 때문에 과거의 역사속의 숫하게 생겨나고 사라진 나라들을 보면 태조나 선조가 우수해도 후손이 받혀주지 못해 사라지는 반복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상적인 군주만 존재한다면 군주제도야말로 이상적인 통치제도가 될 것이다. 반면에 민주제도는 조금 복잡하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 있어도 진정한 민주주의 하에서는 한 시민일 뿐이다. 곧 통치 체계의 불안정함을 이야기하고 이는 국정의 혼란을 야기한다. 그리고 그 혼란은 민주시민의 혼란과 분열을 필연적으로 부르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전 시민이 군주론의 이상적인 군주처럼 이상적인 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자유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양보와 타협의 자세를 갖춘 이상적인 시민.. 모두가 이럴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차이는 민주주의를 그 어느 제도보다도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SF영화나 애니등에서 보이는 미래의 모습상들은 과연 이러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상적인 군주가 등장하거나 이상적인 시민이 등장하는 미래를 그리려고 하고 그 불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결국 삐뚤어진 이상적인 시민과 군주를 그려내게 된다.

 

이상적인 군주가 영원히 통치하기란 불가능하고 이에대한 고찰에서 나온 것이 SF적인 이상적인군주이다.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라든가. 이상적인 또는 카리스마있는 인물의 복제체..또는 뇌만 살아있음으로 해서 통치의 영구성을 꾀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고 시민의 의지와 여론은 알수 없음에 대한 불안을 씻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불안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SF적인 이상적인 시민이다.

 

그곳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시민이란 무엇일까? 이영화 이퀄리브리엄에서 보이듯 또는 매트릭스에서 존재하는 시민들..정신은 있으되 행동력은 없는..그리고기타의 많은 영화와 애니 속에 등장하는 무기력하고 복종하는 시민들..바로 그들이다. 이상적인 군주를 만드는데 대한 그리고 유지하는데 대한 어려움의 정도가 차라리 모든시민을 복종하는 피동체로 만들어버리는 것과 같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완전한 피동적 시민은 더이상의 이상적 군주나 정치체제마저도 필요가 없다. 권력자나 지도자의 모든 명령과 의지를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SF영화에서는 이런 암울한 미래를 오히려 더 그려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방금 말한대로 이상적인 군주나 정치체제를 만들기란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그 근본에는 인간의 본성이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리고 불예측의 존재이기도 하다. 오늘 얌전한 시민이 내일 야차같은 반군이 될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어떤 제도를 만들어도 인간에게 완전히 맞출수 없고, 그들을 완전히 이끌수 있는 군주라 하더라도 영원히 살수도 없을 뿐더러 영원히 산다고 하더라도 시민이 변할수도 있다. 그 고민의 끝이 차라리 모든 시민을 절대복종의 피동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수월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 어떤 제도가 가장 완전할까? 대답은 없다. 이다. 인간도 변하고, 제도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사물도 변화한다. 그 끊임없는 변화속에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 그 대답을 갈구하느니 차라리 영화와 애니속의 변화하지 않는 인간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이리라....

 

하지만 그 어떤인간도 그러한 모습을 바라지 않는다.

미래 그 어떤 인간이 시도할 수도 있겠고, 시민들 모르게 세뇌되어갈 수도 있을 테지만 의식이 있는한..자아가 있는한 그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항상 SF영화나 애니의 끝부분을 보면 완전히 정립되어진것처럼 보이는 그 미래를 현재 우리의 모습과 친한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들의 승리로 끝나고 있다.

 

자아없는 완벽을 찾는 것보다 불완전한 자아를 가진 불안정한 사회에 사는 것이 더 좋기때문이다. 그 이야기들의 본질은 그런 미래를 만들지 말자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미래는 모른다......